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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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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03, 2024 [2024-06-02] 브니엘 칼럼 |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끝마치는 성도의 삶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장 3절)   모든 일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용두사미’, 즉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으로 끝나선 안됩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기꾼들은 ‘용두사미’ 전술을 많이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뭔가 있어 보이게 사람들을 현혹했다가, 결국 끝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용두사미가 되어선 안됩니다. 예수님 믿어 보겠다고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결국 예전의 믿음 없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됩니다. 이번주 암송구절 말씀에서도 이와 같은 엄중한 경고를 남깁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주변에 ‘나는 신앙생활을 꽤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자칫 착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은 자신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봐서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걸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성도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이 오늘 엄중히 선포하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말씀의 의미는,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마지막까지 성령으로 끝마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복음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성령의 역사와 감동’으로 크리스찬이 되었다면, 그 후로 계속되는 성도의 삶에서도 성령과 동행해야 하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령과 함께 끝마쳐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교우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과 함께 동행하시다가, 마지막 순간에도 성령으로 끝마치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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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26, 2024 [2024-05-26] 브니엘 칼럼 | 믿음의 사각지대(Blind Spot)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갈라디아서 2장 10절)    사각지대(Blind spot)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실내 거울(Room mirror)과 측면 거울(Side mirror)을 통해서도 보이지 않는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운전하면서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본의 아니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차선을 변경하거나 후진을 할 때, 꼭 몸을 돌려 사각지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중요한 동기는, 당시 할례파들이 전하고 다니는 ‘행위’로써 구원받는다는 “잘못된/다른 복음”을 방지하고,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다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올바른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주 암송구절인 갈라디아서 2장 10절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 쉬운 구절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바울의 선교팀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선교보고와 회의를 마친 후,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시리아)으로 출발하려 할 때,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도들이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각 지역에서 선교를 하면서) 가난한 자들 돌보는 것을 꼭 잊지 말아 주시오”(갈 2:10)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범할 수 있는 오류/실수가 한 가지 있습니다. 오직 ‘믿음’만을 강조한 나머지, 영적/육적으로 가난한 자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돌보는 ‘행위’가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사도들과 바울의 선교팀도 계속 강조한 것처럼, 사람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이 변함없는 성경적 진리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신앙’이 정말 있다면, 동시에 내 주변의 어려움 당하는 이웃들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각지대(Blind spot)가 생기지 않도록, 오늘도 내 눈과 몸을 돌려 주위를 살피시고 돌보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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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19, 2024 [2024-05-19] 브니엘 칼럼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전도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장 10절)   고객서비스(Customer Serv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왠만한 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가게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고객을 더욱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오늘 암송구절 말씀에서는 이런 고객서비스와는 정반대되는 말씀을 합니다. “선교/전도의 목적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있지 않다(10절)”고 선포합니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Service for Customer)가 아닌, 하나님 중심의 서비스(Service for God)를 단호히 선포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선교팀에 의해, 갈라디아 지역에 ‘예수의 복음’이 처음 전해졌고, 교회도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 선교를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례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갈라디아로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 -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례’를 포함한 구약성경의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큰 차이가 없는 비슷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전혀 “다른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진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것을 교묘히 더하는/혼합하는 것에 우리는 단호히 대처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예수님 만으로는 안된다는 말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다른 복음/가짜 복음’을 하나님께서 절대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고객 중심의 서비스는… 사실상 전도나 선교라기 보다 비즈니스(Business)에 가깝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자기 중심/사람 중심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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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12, 2024 [2024-05-12] 브니엘 칼럼 | 아는 것(To know)에서 사는 것(To live)으로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서 1장 9절)   목숨 걸고 ‘예수님의 복음’을 아시아와 유럽에 전했던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이 반대하는 ‘예수’를 전했다는 이유로 결국 체포되었고,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졌던 바울은 항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므로, 결국 대법원이 있는 수도 로마까지 올라가 최종 재판을 받게 됩니다.    “골로새서”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수감 중이었던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썼던 편지들 중 하나입니다. 수신자는 소아시아(현재 터키) 지역의 “골로새”라는 도시에 있는 크리스챤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초를 겪던 와중에도,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고 있다(9절)” 옥중에서도 그가 선교했던 교회와 교인들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위해 ‘2가지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기를(9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 뜻을 이루는게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신령한 지혜” 곧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게(10절)”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신령한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면,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아는 것이 실제 삶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10절)”과 “모든 일에 선한 열매를 맺는 것(10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행함’을 통해 실제 삶에서 열매가 나타나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뜬구름 잡는 사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살아 역사하는 ‘생명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아는 것’에 머물지 마시고, 열매 맺고 계속 성장하는 삶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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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06, 2024 [2024-05-05] 브니엘 칼럼 | 아는 것(To know)’에서 ‘사는 것(To live)’으로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서 1장 9절)   목숨 걸고 ‘예수님의 복음’을 아시아와 유럽에 전했던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이 반대하는 ‘예수’를 전했다는 이유로 결국 체포되었고,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졌던 바울은 항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므로, 결국 대법원이 있는 수도 로마까지 올라가 최종 재판을 받게 됩니다.    “골로새서”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수감 중이었던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썼던 편지들 중 하나입니다. 수신자는 소아시아(현재 터키) 지역의 “골로새”라는 도시에 있는 크리스챤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초를 겪던 와중에도,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고 있다(9절)” 옥중에서도 그가 선교했던 교회와 교인들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위해 ‘2가지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기를(9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 뜻을 이루는게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신령한 지혜” 곧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게(10절)”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신령한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면,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아는 것이 실제 삶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10절)”과 “모든 일에 선한 열매를 맺는 것(10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행함’을 통해 실제 삶에서 열매가 나타나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뜬구름 잡는 사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살아 역사하는 ‘생명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아는 것’에 머물지 마시고, 열매 맺고 계속 성장하는 삶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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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30, 2024 [2024-04-28] 브니엘 칼럼 | 중생(Born again)의 씻음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5)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아내/남편과 결혼하시겠습니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가끔씩 재미삼아 들어보는 질문들입니다. 마음 한 켠에 다시 태어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현재의 마음이나 만족도를 확인하는 질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경을 통해 다시 태어남에 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Born again)”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몸은 예전과 다를 바 없지만, 마음/영혼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중생”입니다.      오늘 암송구절 말씀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디도서 3:5)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을 때 일어나는 중요한 영적인 현상으로서 “중생(Born again)”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냥 “중생”이라고 하지 않고, “중생의 씻음”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영혼이 새로 태어나려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씻음(Cleansing)”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쓴 편지에서 여러 번 강조합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는 더러운 마음을 씻을 수 없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찬송가 250장과 259장의 가사를 지은 호프만(Hoffman)도, 바울이 말하는 이런 “중생의 씻음”에 대해 깊이 깨닫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 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찬송259장) 여러분은 예수님의 보혈로 마음을 씻으셨습니까? 이번 한 주도 “중생(Born again)의 씻음”을 깨닫고 경험하는 시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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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21, 2024 [2024.04.21] 브니엘 칼럼 | 부패(Corruption) VS 본(Example)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라” (디도서 2:7-8)      교회나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비판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말은 그럴듯한데 그에 따르는 행동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이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아들처럼 아끼는 제자 디도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당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 받지 않게 하라(2:5)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라(2:8)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2:15)”              사실 우리와 신앙이 다른 사람들은, 크리스찬들 안에 있는 믿음을 들여다 볼 ‘영적 시력(Spiritual sight)’이 아직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와서 믿어보라”고 말하기 전에, 믿음에 따르는 열매, 곧 선한 행동을 함께 보여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만도 못하게 행동한다”는 말은 절대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구체적으로 이렇게 당부합니다.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에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을 보이라...(2:7)” 모든 일에 디도 자신이 먼저 선한 본(Example)이 되어 달라는 부탁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의 교훈이 부패하지 않게 하라”는 중요한 말씀을 남깁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인의 입을 통해 전달 되는 거룩한 말씀들이 “부패한 말 / 썩은 말”이 되지 않으려면, ‘그와 같은 본을 보이고 선한 행동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말이 ‘죽은 말/부패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믿음 - 소망 - 사랑’의 거룩한 말씀 그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 바울의 애절한 부탁처럼… 그 거룩한 말씀들이 우리 때문에 ‘부패하고 썩은 말씀’이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크리스찬’이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 중 다만 한 가지라도, ‘살아 움직이는 본(Example)’이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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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14, 2024 [2024.04.14] 브니엘 칼럼 | Again : Small thing, Big thing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디도서 1장 10절)   Don’t sweat the small thing!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소한 일인 줄 모른 채, 마치 큰 일인 것처럼 목숨 걸고 싸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 크게 다툴 일은 아니었는데…’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큰 일(Big thing)인지, 아니면 사소한 일(Small thing)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항상 필요합니다.   2000년 전 중동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할례파”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목숨 걸고 주장했던 것은, 하나님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았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의 선교팀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라고 전도하면, 할례파들은 바울 선교팀 뒤를 따라다니며, 예수도 좋지만 ‘할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지금은 신학적으로 다 정리가 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할례파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도 바울은 아끼던 제자 디도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이런 자들(할례파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디도서 1:11) 하나님의 뜻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구약성경의 할례와 제사를 갱신하는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왜 필요했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할례’가 small thing이 되고, 예수로 말미암는 ‘마음의 할례’가 Big thing이 되었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어떤 것에 목숨을 걸고 사십니까? 생명을 걸만한 중요한 일에 열정을 다하고 계십니까? 이번 한 주도 나의 인격과 신앙에 예수의 흔적이 남는 인생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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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07, 2024 [2024.04.07] 브니엘 칼럼 | Small thing, Big thing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디도서 1장 10절)   Don’t sweat the small thing!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소한 일인 줄 모른 채, 마치 큰 일인 것처럼 목숨 걸고 싸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 크게 다툴 일은 아니었는데…’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큰 일(Big thing)인지, 아니면 사소한 일(Small thing)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항상 필요합니다.   2000년 전 중동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할례파”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목숨 걸고 주장했던 것은, 하나님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았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의 선교팀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라고 전도하면, 할례파들은 바울 선교팀 뒤를 따라다니며, 예수도 좋지만 ‘할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지금은 신학적으로 다 정리가 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할례파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도 바울은 아끼던 제자 디도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이런 자들(할례파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디도서 1:11) 하나님의 뜻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구약성경의 할례와 제사를 갱신하는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왜 필요했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할례’가 small thing이 되고, 예수로 말미암는 ‘마음의 할례’가 Big thing이 되었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어떤 것에 목숨을 걸고 사십니까? 생명을 걸만한 중요한 일에 열정을 다하고 계십니까? 이번 한 주도 나의 인격과 신앙에 예수의 흔적이 남는 인생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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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31, 2024 [2024.03.31] 브니엘 칼럼 | 부활의 산 증인들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마가복음 16장 7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은 마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있은 후 3일째 되던 날 새벽의 일로 시작됩니다. 3명의 여인이 용기를 내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올라갑니다. 손에는 시신에 바를 향품(Perfume)이 들려 있었고, 모두 무덤 앞의 큰 돌을 어떻게 치울까 걱정이었습니다.     사실 이 여인들이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을 갔거나, 예수님의 시신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무덤에 용기 있게 찾아간 것만으로도 ‘훌륭한 신앙’이라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신앙(Faith)’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의 여부가 중요함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들고 갔다는 것과 무덤 앞의 큰 돌문을 어떻게 치울까 고민했다는 것은, 곧 주님의 ‘부활’을 실제로는 믿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말로 또는 머리로는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진짜 믿음의 여부는 실제 행동에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정말 신뢰했다면, 시체에 바를 향품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 걱정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살아나셨고, 돌문도 이미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의 부활’을 확고히 믿으십니까?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인생 가운데 실제로 경험하고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이 3명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도… 처음엔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그 분의 말씀과 영(Spirit)이 그들 마음 가운데 충만히 임했을 때, 의심 많던 제자들은 ‘부활의 확고한 증인’이 됩니다. 그 생명 다할 때까지 ‘예수를 전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하신 주님의 산 증인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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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24, 2024 [2024.03.24] 브니엘 칼럼 | 영적 자유함 (Spiritual Freedom)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마가복음 11장 2절)      드디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특이한 점은 ‘새끼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다는 점입니다. 왕이나 개선 장군이 타던 ‘잘 생기고 건장한 말’이 아닌, 초라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말씀들을 그대로 성취하고 계십니다. 특히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몸소 이루셨습니다.        ‘새끼 나귀’에 담긴 의미는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함, 낮아짐, 섬김’에 대한 깊은 뜻입니다. 하늘에 높이 계셔야 할 하나님의 아들께서 왜 이 낮은 땅까지 내려오셨습니까?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셔도 충분했을 분이, 왜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까?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생활하셔도 될텐데, 왜 가장 낙후된 갈릴리 나사렛에서 지내셨습니까? 다윗과 솔로몬처럼 왕의 보좌에 앉으셔도 되는데, 왜 끔찍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셔야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몸소 보여주신 ‘신앙의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주님의 이런 겸손함과 섬김의 마음을 진정 깨닫지 못한다면, 그 분의 진정한 팔로워(Follower)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의미를 꼭 되새겨야 할 장면은, 묶여 있던 새끼 나귀를 풀어서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장면입니다. 참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전에 묶여 있던 헛된 것들로부터 자유케 풀려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조선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는 1885년 부활절 아침에 인천 제물포 항구에 도착하여 이런 기도를 올립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 곳에 왔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그동안 이 백성을 얽어 맨 결박을 끊으사, 참 빛과 자유를 주옵소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복음’을 예수를 통해 경험함으로, 그 동안 얽매여 있던 더럽고 악한 것들로부터 풀려나 자유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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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18, 2024 [2024.03.17] 브니엘 칼럼 | 값을 매길 수 없는 은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마가복음 Mark 10:38)    “값 싼 은혜(Cheap Grace)”란 말이 있습니다. 독일에 “본회퍼”라는 목회자가 독재자 “히틀러”에 동조하는 독일교회와 교인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Grace)’는 정치 권력이나 물질적 욕망을 뛰어 넘어, 훨씬 더 고결한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는 것인데, 당시 독일 교회와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싼 은혜(Cheap Grace)’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히틀러의 권력 앞에, 독일 교회가 분별력을 잃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꼭 간직해야 할 고결한 신앙의 가치를 강조하십니다.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나는 삼 일 만에 살아니리라”(34절) 벌써 3번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곧이어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엉뚱한 요구를 합니다.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혀 주옵소서…”(37절)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은 잊어버린 채,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가득합니다.                 주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신앙의 도전을 주십니다. “너희는 지금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겠느냐?”(38절) 스승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할 수 있다”(39절)고 장담하지만, 곧이어 또 다시 치열한 서열 다툼을 계속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남기시는 중요한 메시지는 계속 놓치시면서, 내 욕심을 채우려는 자리는 계속 탐하진 않으십니까? 예수님이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는 ‘잔과 세례’의 의미에는 무관심 한 채, 신앙생활을 계속 하진 않으십니까? 신앙의 고결함을 져버리고, 내 욕심을 채우려는 “값싼 은혜”에 빠져 계시진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의 정신, 그리고 목숨으로 대신하신 죄사함의 ‘은혜’를 더욱 온전히 깨달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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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10, 2024 [2024.03.10] 브니엘 칼럼 | 먼저 됨의 축복을 지키십시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가복음 Mark 10:31)    “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와 권력을 많이 물려 받을수록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이고, 아무것도 없이 태어날수록 ‘흙수저’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흙수저가 금수저 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정반대의 말씀을 저희에게 선포하십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0:31)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왜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말씀하셨을까요? 부와 권력의 관점에서만 보면 어려운 일일지 몰라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는지…’ 우리는 우선 27절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 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주님이 말씀하셨던 ‘먼저 됨’의 의미는, 세상적 성공에 초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참신앙을 갖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 온 부자 청년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아직 한 가지 부족함이 있다. 너에게 있는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리고 다시 와서 나를 따르라…”(21절) 이 말씀은 단순히 ‘모든 재산을 팔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의미 보다는, ‘믿음의 본질적 문제’를 묻고 계십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잘 해왔다고 착각했던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전 재산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질문 앞에, 슬픈 표정으로 떠났습니다(22절). 그가 가졌던 실제 믿음은 ‘아직 돈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우리의 실제 믿음이 어떠한지 확인하십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내려놓고, 먼저 됨의 영적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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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03, 2024 [2024.03.03] 브니엘 칼럼 | 기도의 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9장 29절)    예수님께서는 3명의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올라 가십니다. 예수님 사역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기도가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홀로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매우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바로 전 날까지도 밤을 새워 기도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정말 기도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제자들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눈부시게 흰 광채가 나는 모습으로 변형 되십니다(2-3절). 앞으로 부활하실 예수님의 모습이 어떠하실런지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 때 기도하지 못하고 계속 졸고 있던 제자들의 눈에, 그 영광스럽게 빛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머무는 것이 너무 좋사오니, 텐트 3개를 만들어서 주님과 함께 계속 여기 머물고 싶습니다(5절)...”            8장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여 큰 칭찬을 받았고,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예수님께 크게 혼나는가 하면, 다시 9장에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치 베드로가 보여준 모습처럼 오르락 내리락 갈팡질팡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제자들은 왜 ‘빛나는 영광’은 계속 누리고 싶으면서, ‘십자가의 사명’은 감당하기 싫어했을까요? 오늘 암송구절 말씀에서도 주님은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능력/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모든 일의 처음과 끝에서 ‘기도’를 한다는 것은, 내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강력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신뢰관계 속에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기도가 능력이 될 수 있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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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
    매릴랜드브니엘교회February 26, 2024 [2024.02.25] 브니엘 칼럼 | 희미하지 않은 분명한 믿음으로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마가복음 8:24~25)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농기구인 ‘낫’의 모양이 ‘기역(ㄱ) 자’임에도 불구하고, 낫을 보며 ‘ㄱ’을 못 읽는다는 뜻입니다. 매우 답답하고 무지한 상태를 가리키는 속담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8장에 나오는 제자들도 스승인 예수님을 너무 답답하게 만듭니다. 방금 전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보았음에도,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로 옆에 함께 다니면서도, 여전히 매사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의 영적인 무지함을 꽤뚫어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이토록)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마가복음 8:17~18) 심히 꾸짖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교회에 다닌지 오래 되었으나, 아직도 예수님이 진짜 누구신지 깨닫지 못하는 우리를 꾸짖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예수님은 한 맹인의 눈에 안수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나무가 걸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을 보면서 나무가 걷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뚜렷이 보이지 않고 희미하게 보이므로, 사람을 나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가 정말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옆에 모시고 다니면서, 여전히 매순간 염려하며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과 늘 동행한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먹을 것/입을 것’에 대한 세상 걱정으로 가득하지는 않으십니까? 간절히 축원 드리기는, 그동안 희미하여 보이지 않던 주님이, 분명하게 깨달아지는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번 한 주도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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