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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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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September 29, 2024 [2024-09-29] 브니엘 칼럼 | 아직 기회가 남았을 때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예레미야 7장 25절)   2600여 년 전, 남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처참히 멸망 당하기 직전의 상황을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경고의 신호(Signal)를 끊임없이 보내시는데도, 계속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내가 오늘까지도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곧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예레미야 7:25-26)    둘째, ‘그럼 당시의 모든 유다 사람들은 (마치 탕자처럼)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때마다 절기마다 여전히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동시에 뒤돌아서 바알과 아세라 등 온갖 우상들을 겸하여 섬겼습니다. 예레미야 7장 17절 말씀처럼,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유대지역의 모든 도시에서, 심지어 성전이 있는 수도 예루살렘에서 조차, 공공연히 길거리에서 우상 숭배하는 일들이 자행되었습니다.          과거 유다 사람들의 이야기 또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이 말씀을 묵상케 하신 이유는, ‘현재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끊임없이 보내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싸인들’을 놓치고 살 때가 여전히 많습니다. 안 보이고 안 들려서 놓치기도 하지만, 사실 ‘보고 듣고 충분히 알면서도’ 외면하고 무시할 때가 더 많습니다. 또한 실제로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다가 멸망할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실 때가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면, 다시 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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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September 22, 2024 [2024-09-22] 브니엘 칼럼 | 살아 있는 예배, 그리고 예배다운 삶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예레미야 7장 2절)   인생을 살면서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와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당연’한 것은 없고, ‘우연’인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 중에서, 그 이유와 의미를 깊게 생각하고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가 제사 드리는 일을 매우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 이유와 의미를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성전에 가는 것이 관습이 되었고, 그렇게 하면 할수록 본래의 의미와 목적은 점점 퇴색되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의 ‘관습적인 예배’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예레미야 7장 9-10절에 보시면,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9절)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10절)” 삶은 무너져 있으면서, 심지어 바알이나 다른 신들을 동시에 섬기면서도, 앞에서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오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무감각한 예배자들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 세우시고 외치게 하십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말씀이 필요하지만,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생명의 말씀’이 여전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2절).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당연히’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이유와 목적을 진실되게 깨닫고,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교회를 ‘도둑의 소굴’로 만들지 않고, ‘거룩한 성전’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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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September 15, 2024 [2024-09-15] 브니엘 칼럼 | 신앙의 전성기를 다시 회복하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예레미야 6장 16절)   여러분 신앙의 ‘최고 전성기(Golden period)’는 언제셨습니까? 운동 선수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잘 맞았을 때의 스윙을 기억하라!’ 수 천 번, 수 만 번의 공을 치는 선수들도 잘 맞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잘 맞았을 때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혹시 ‘슬럼프(Slump)’에 빠지더라도 전성기 때의 스윙감각을 되찾으려고 애씁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야 6장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16절) 정신 없이 분주한 우리의 인생길에서, 잠깐 ‘멈춤(Stop)’의 시간을 갖고, ‘내가 어디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내가 가장 순수한 믿음으로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믿음의 전성기’가 언제 였는지 떠올려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 순수함과 선함을 회복해야만, “인생의 진정한 평강(16절)”을 다시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멸망 직전의 ‘폭풍 전야’와도 같던 당시 유대 사람들은,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 말합니다. 이전의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가기를 끝내 거부합니다.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16절)” 크게 소리칩니다. 멸망의 길로 가면서도,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이 말씀을 꼭 붙드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예레미야 6장 16절) 하나님에 대한 감동과 순수했던 믿음이 다시 회복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제2/제3의 신앙의 전성기를 다시 뜨겁게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신앙의 회복이 참 된 평강을 누리는 첩경입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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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September 08, 2024 [2024-09-08] 브니엘 칼럼 | 이중적인 믿음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예레미야 5장 1절)   북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이미 앗수르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 당했습니다(BC 722년). 그 후 남 유다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오늘 암송구절 말씀이 ‘유다의 상황’을 잘 알려줍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단 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타락으로 유명했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도, 의인 10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의인 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정도로 타락했다는 증거이자, 하나님께서 참으실 만큼 정말 오래 참으셨음을 간접적으로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용서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어떻게든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진심을 예레미야 5장 18절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사랑의 매를 드시긴 하지만, 유대인들을 모두 죽이시려는 의도가 아니라, ‘올바른 길, 생명의 길’로 다시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십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렘 5:2) 예루살렘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제사도 드렸고,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모습은 어땠습니까? 말로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말하고, 실상은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삶이 너무 익숙해져, 나중엔 죄의식 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실 때가 언제십니까? ‘신앙이 없는 것’보다, ‘이중적인 믿음’을 더욱 가증히 여기십니다.      –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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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September 01, 2024 [2024-09-01] 브니엘 칼럼 | 인도하심/함께하심의 축복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초함이 아니냐”(예레미야 2:17)   사람은 가장 관심이 가고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돈)을 사용합니다. 여러분의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여 소중하게 처리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과연 ‘하나님과 소통하는 1:1 시간’이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일이십니까?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기적적으로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탈출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시내산’이라는 곳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중요한 ‘약속’을 맺습니다.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        극적인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지키겠습니다)’ 하나님과 굳게 약속합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로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약속’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흘러, 유대인들이 멸망 당하기 직전 상황인 예레미야 2장에 보면, 소리를 높여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리라”(렘2:20) 외치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님과의 약속도 하찮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세상의 쾌락을 즐거워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전에 하나님과 약속했던 말씀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또한 왜 그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가를 다시금 깊이 깨달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을 억누르는 ‘멍에나 굴레’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려는 ‘생명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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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9
    매릴랜드브니엘교회August 25, 2024 [2024-08-25] 브니엘 칼럼 | 회복의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예레미야 1:8)   예레미야(Jeremiah)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눈물 흘리며 하나님 말씀을 애타게 선포했을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흔들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음이 짐작됩니다. 또한 역사적인 의미도 별명에 담겨 있습니다. ‘유다(Judea)’가 ‘바벨론(Babylon)’에게 처참히 멸망 당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봐야 했던 ‘눈물의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한 때 일본에서 ‘실패학’이라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대부분 성공한 사례나 인물로부터 교훈을 찾고,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실패학’은 기존의 방법과는 반대로, 실패한 인물이나 사례를 연구하여, 실패의 요인이 무엇인지 찾아 보고,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성공의 기회를 다시 찾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기독교적 요소가 많이 담겨 있는 이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잘 나고 똑똑해서,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 또는 ‘우리의 선한 공로가 많이 쌓여서’ 구원 받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약하고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며, 인생 가운데 ‘잘못된 부분, 실패한 부분’ 곧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어야만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600년 전, 동족을 향한 “예레미야”의 애타는 선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멸망 당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자’ 눈물로 외쳤습니다. 세상적인 불안과 염려로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가운데 살던 사람들을 향해,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깨닫지 못하고 무너지는 예루살렘을 보면서, ‘실패’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다시금 깨닫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유다의 모습을 보면서, ‘회복의 역사’도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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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
    매릴랜드브니엘교회August 18, 2024 [2024-08-18] 브니엘 칼럼 | 연약한 나… 그러나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 1장 6절)   하나님께서 위기의 시대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당시에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과 소통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었던 사람은 매우 소수였고, 대부분의 유다 사람들은 위기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멸망 당하는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들은 정작 ‘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새롭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이 정도 신앙이면 됐지…’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신앙의 성장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런 경우에도 정말 안타까운 점은, 정작 무너져 가는 자신의 영적 현실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그 시대에 쓰시는 사람들의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그 중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스스로 겸비한 사람들’이 쓰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부름 받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예레미야 1:6)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래서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스스로를 ‘아이(Child)”라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마 거의 없으시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러나 한 시대에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고 약함’을 항상 깨닫고, 그래서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아직도 아이입니다”(예레미야 1:6) 고백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주님께서는 “너는 아이라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므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1:7~8) 응답하시고 능력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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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ugust 11, 2024 [2024-08-11] 브니엘 칼럼 |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도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5장 15절)   신약성경 야고보서 5장은 ‘성도의 기도생활’에 대한 큰 깨달음을 주십니다.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찬송할지니라” 말씀하십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과 유대교인들의 모진 핍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도하며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상황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5장 15-16절은 ‘기도의 원리와 능력’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여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이 말씀을 통해, ‘기도의 참 된 원리와 능력’을 발견할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3가지를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 우선 우리의 기도가 “믿음의 기도, 의로운 간구”여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힘이 크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간구의 내용이 ‘의로워야’ 합니다. (2) 두 번째는 육(질병)의 문제 뿐만 아니라, 영(죄악)의 문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육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영의 문제가 해결되는 일에 더 큰 감동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내 문제’ 뿐만 아니라, ‘서로의 문제(16절)’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과 교회, 이웃들이 함께 살아나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의 기도/의로운 간구”를 통해, 영/육의 문제가 해결되는 감격을 누리시고, 내 공동체가 함께 살아나는 간증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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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ly 21, 2024 [2024-07-21] 브니엘 칼럼 | 크리스찬의 언어생활 - 절제된 말하기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서 3장 2절)   야고보(James)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주제(Theme)로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실천사항으로, 야고보서 3장에서 ‘크리스찬의 언어생활’에 대해 뼈 있는 말을 합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야고보서 3:8) 우리의 ‘말, 곧 혀’를 제어하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악하고 센 말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보다는, ‘화평한 말’로 주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야고보의 편지 3장 3절에는, “말(Horse)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온 몸을 제어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온 몸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작은 재갈로 인해서 말은 ‘주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갈 수 있습니다. 4절에 등장하는 “배(Ship)의 키”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의 입장에서는 ‘왜 내 맘대로 가지 못하게 하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지만, 작은 키로 인해 배 전체는 ‘안전한 항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 살릴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진 것이 우리의 혀입니다. 여전히 내 생각 내 감정 대로만 말하면 실수가 너무 많고, 인간관계도 무너집니다. 그래서 우리 혀에 ‘재갈’이 필요하고, ‘키’도 필요합니다. 즉 ‘올바르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먼저 찾은 후, 절제된 말을 하는 것’이 항상 중요합니다.    야고보서 3장의 결론과도 같은 말씀,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8)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에 꼭 새길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번 한 주도 화평한 말을 심어, 의로운 열매를 많이 맺으시고, 영혼을 살리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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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ly 14, 2024 [2024-07-14] 브니엘 칼럼 | True Christians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행하기도 하라” (야고보서 2:12)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 중에 “영혼이 1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때’ 쓰는 말입니다. 성경 야고보서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초창기 기독교가 불같이 부흥하던 시기, 야고보가 선교하던 공동체 내에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에게 ‘믿음/신앙’이 있다고 스스로 말은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들이 신앙공동체 내에 존재했던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말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2:16) 말로는 ‘평안하라, 따뜻해라, 배고프지 말아라’ 이야기 하면서도, 실제론 어려운 이웃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정말 그를 통해 진심이 느껴질까요?           이러한 사람들에게 야고보가 제시하는 솔루션(Solution)은 명확했습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2:12)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 율법’이란, 곧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방법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결정하고 행동할 때, ‘지금 성령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에 집중하면서, 그 감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심판 받을 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라”는 말씀을 붙드셔야 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게 될 것’임을 생각하며, 매사에 책임 있게 말하고 행동하라는 의미입니다. 매순간 ‘성령의 이끄심 대로 결정/행동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두려워하며 책임 있는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크리스찬(True Christians)’입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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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ly 07, 2024 [2024-07-07] 브니엘 칼럼 |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장 22절)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때론 그것이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행동’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씀대로 행하는지’를 보시고, 그의 ‘믿음’이 진짜인지 확인하십니다. 하나님을 정말 신뢰하는 사람은 그 분의 말씀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주 암송구절도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22절) 진실된 ‘믿음’을 가졌는지는 반드시 ‘행동’으로 증명되고,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곧바로 이어지는 야고보서 1장 본문에서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의 2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1) 거울로 자신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도 씻지 않습니다(23-24절). (2) 스스로 자기 믿음이 좋은 줄 착각하며, 말은 많이 하지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26절).    하나님께서는 이번주 암송구절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참 된 경건’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닌, “듣고 실천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25절). 구체적으로는, (1) 자신의 신앙이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치열하게 지키는 것과 (2) 어려움 당한 이웃들을 실제로 돌보는 실천이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신앙’입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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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30, 2024 [2024-06-30] 브니엘 칼럼 |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장 22절)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때론 그것이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행동’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씀대로 행동하는지’를 보시고, 그의 ‘믿음’을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신뢰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주 암송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22절) 진실된 ‘믿음’을 가졌는지는 반드시 ‘행동’으로 증명되고,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믿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곧바로 이어지는 야고보서 본문에서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의 2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1) 거울로 자기 얼굴이 더러운 것을 보고도 씻지 않습니다(23-24절). (2) 스스로 자기 믿음이 좋은 줄 착각하여, 말이 많지만 행동하진 않습니다(26절).    하나님께서는 이번주 암송구절 말씀에서 ‘참 된 경건’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각인 시켜 주십니다.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닌, “듣고 실천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25절). 구체적으로는, (1) 자신의 신앙이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치열하게 지켜내는 일과 (2) 어려움 당한 이웃들을 실제로 돌보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믿음’입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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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24, 2024 [2024-06-23] 브니엘 칼럼 | 심고 거두는 인생, 나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7절)   아기가 태어나 자라면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것을 보면서, 놀라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사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콩 심은데서 콩이 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친 적은 없겠지만, 실상은 부모 세대들도 거짓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거짓된 마음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이끌고 계신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암송구절은 우리에게 이런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갈6:7)       우리가 한 번 거짓말을 하면, 3번의 죄를 동시에 짓게 됩니다. 일명 ‘3중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선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고, 거짓말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기만(Deceit)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심고 거두며 살아야 합니까? 갈라디아서 6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참 된 성도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이, ‘육체와 관련된 것을 심으면, 그것은 반드시 썩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썩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위한 삶을 살면, 반드시 영원한 것을 얻습니다.’  크리스찬의 삶의 목적을 영원히 썩지 않을 것에 두고 살아가는 이유는, 주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이고, 성도들은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굳건히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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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17, 2024 [2024-06-16] 브니엘 칼럼 | 누구의 종이 되어 살 것인가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였더니”(갈라디아서 4:8)    지금 회상해보면, 과거에 내가 ‘참 어린 생각과 행동이 많았구나…’ 종종 깨닫게 됩니다. 특히 초등학교/중학교 때 숙제로 썼던 일기장을 다시 읽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과거 모습들을 이렇게 비유로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하였더니…”(갈 4:3)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이전에 가졌던 어리석인 모습을 가리켜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서 종 노릇했다”고 표현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없었던 내 인생’이 얼마나 부족했었는지, ‘마치 초등학생 시절 처럼 유치했었는지…’ 마음 깊이 깨달으셨습니까?            바울은 ‘예수님이 없는 어떤 종교나 신념도 자기자신을 온전히 구원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종교나 신념에 빠져들수록, 자기자신을 더욱 착각하게 만들고 더욱 악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8절 말씀을 통해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선포합니다.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였다…” 누구나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대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에 얽매여 “종 노릇”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자기자신만의 신념과 인간의 본성이 서로 만나면, 헛된 것에 종 노릇하며 교만하게 살아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영적인 ‘초딩(초등학교) 시절’을 과감히 벗어나셨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신념을 따라 ‘종노릇’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딸 되어, 의미 있고 소망 찬 인생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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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09, 2024 [2024-06-09] 브니엘 칼럼 |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끝마치는 삶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장 3절)   모든 일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용두사미’, 즉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으로 끝나선 안됩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기꾼들은 ‘용두사미’ 전술을 많이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뭔가 있어 보이게 사람들을 현혹했다가, 결국 끝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용두사미가 되어선 안됩니다. 예수님 믿어 보겠다고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결국 예전의 믿음 없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됩니다. 이번주 암송구절 말씀에서도 이와 같은 엄중한 경고를 남깁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주변에 ‘나는 신앙생활을 꽤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자칫 착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은 자신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봐서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성도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중요한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이 오늘 엄중히 말하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의미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령과 함께 시작했으면, 마지막까지 성령과 함께 끝마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복음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성령의 역사’로 크리스찬이 되었다면, 이어지는 성도의 삶에서도 ‘성령과 동행’해야 하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령과 함께’ 끝마쳐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내가 노력해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과 함께 동행하시다가, 마지막 순간에도 성령으로 끝마치는 신앙의 여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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