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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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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14, 2026 [2026-05-10] 목회칼럼 | 난 누구를 위해 사는가
    이번주 암송구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로마서 1장 1절)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으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기 자신에 대해선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울 스스로가 무릎을 치며 깨달은 인생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시 수도인 로마에 살고 있던 크리스찬들에게 편지(로마서)를 쓰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간략히 소개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이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 받은 사람이다”(로마서 1:1)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한 절로 소개를 마친 후, 그 다음 이어지는 내용부터는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길고 자세히 열정적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내가 진짜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보니, 나에 대해서는 되도록 간략히 소개하고, 그러나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서는 심혈을 기울여 자세히 설명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바울과 같은 인생을 살아낼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에 대해서는 짧고 겸손하게…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길고 설득력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인생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의 수려한 내용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의 복음을 더 열정적으로 힘 있게 증언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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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19, 2026 [2026-04-19] 브니엘 칼럼 | 메말라 황폐해진 나의 마음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시편 143편 6절)    찬송가 “빈들에 마른 풀같이”는(183장) 열정적인 한국 크리스찬들에게 매우 사랑 받는 찬송 중 하나입니다.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1절)       다윗 역시 시편 143편을 매우 애절한 마음으로 써내려 갑니다.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시 143:6) 다윗의 인생 가운데 가장 상처 받고 가장 참담한 마음일 때 지었던 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쩍쩍 갈라진 메마른 땅… 마치 다윗 자신의 피폐해진 마음과 같다고 애타게 부르짖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다윗의 위대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무너지고 포기하는 것 대신, 상처 받고 참담한 마음을 모아 주님 앞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주의 위로와 응답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시 143:8)             사실 저희에게 ‘보장된 평안함이나 당연한 안락함’은 없습니다. 우리를 지탱해주던 환경/인맥이 무너지고, 인간의 연약함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는 평소에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인생 가운데 무력하고 연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며, 그 분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로소 자신의 황폐함을 깨닫고, 나를 더 성찰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마침내 ‘메마른 땅에 충만한 비를 내리시는 나의 하나님’이심을, 우리 모두가 생생히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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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12, 2026 [2026-04-12] 브니엘 칼럼 | 신중하고 사려 깊은 언어생활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편 141편 3절)    ‘사려 깊지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처 깊게 생각하지 못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주로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뒤늦게 깨닫고 돌이키며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시편 141편의 저자였던 다윗 왕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옵소서”(시 141:3) 평소 자신의 경솔했던 말들을 깨닫고, 더욱 조심하며 절제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좀 더 깊이 묵상하다 보면, 중요한 신앙생활의 원리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다윗) 스스로는 자기자신의 입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히 자신의 언어생활 전체를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다윗 왕의 애절한 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스스로 제 입을 통제할 수 없기에)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옵소서…”(시 141:3) 생각나는 대로 여과 없이 즉시 말하는 것이 아닌, 내 입에 세워 둔 ‘파수꾼(guard)과 문(door)’을 거쳐, 사려 깊게 말할 수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말이 어떻게 사용될지 잠시 생각하며… 하나님의 선한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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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05, 2026 [2026-04-05] 브니엘 칼럼 | 부활의 문을 여십시오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마가복음 16장 7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은 마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있은 후 3일째 되던 날 새벽의 일로 시작됩니다. 3명의 여인이 용기를 내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올라갑니다. 손에는 시신에 바를 향품이 들려 있었고, 모두 무덤 앞의 큰 돌을 어떻게 치울까 걱정이었습니다.     사실 이 여인들이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을 갔거나, 예수님의 시신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무덤에 용기 있게 찾아간 것만으로도 참 ‘훌륭한 신앙’이라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신앙(Faith)’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는 상대평가가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의 여부가 중요한 절대평가임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들고 갔다는 점과 무덤 앞의 큰 돌문을 어떻게 치울까 고민했다는 것은, 곧 주님의 ‘부활’을 실제론 믿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말로는 또는 머리로는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진짜 믿음의 여부는 실제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정말 신뢰했다면, 시체에 바를 향품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살아나셨고, 돌문도 이미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계십니까?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인생 가운데 실제로 경험하고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이 3명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도… 처음엔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그 분의 말씀과 영(성령)이 그들 마음 가운데 충만히 임했을 때, 의심 많았던 제자들은 ‘부활의 확고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 생명 다할 때까지 ‘예수를 전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하신 주님의 산 증인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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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23, 2026 [2026-03-22] 브니엘 칼럼 | 눈물의 기도, 회복의 능력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편 137편 1절)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하고 싶은데, 부득이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던 초창기 크리스찬들이 그랬고, 일제시대의 압박을 겪었던 우리 크리스찬 선조들이 그랬으며, 고대 바벨론 제국에 포로 잡혀 갔던 유다 사람들도 그런 시기를 겪었습니다.      코비드 사태를 지나온 우리들도, 현장 예배를 마음껏 드리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정치적, 군사적 또는 전염병 등의 이유로… 예배가 제한 받는 경우들이 시대마다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현재의 이슬람 지역과 공산권 국가의 크리스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성경 시편 137편의 저자는 유다 출신의 사람으로, 바벨론(현재 이란-이라크 지역)에 포로 잡혀 갔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137편 1절에서 고백하기를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기록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제한되는 경우가 실제 역사를 통해 있어 왔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음껏 예배할 수 없는 그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떠올리며 혼자서라도 눈물로 예배할 수 있는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2026년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무릎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전에는 드리지 못했던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이 시편 말씀에 도전 받아, 간절한 눈물의 기도가 다시 회복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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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17, 2026 [2026-03-15] 브니엘 칼럼 |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시편 135편 15절)    시편 135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15절) 무슨 의미일까요? 그 다음 구절을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의 우상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이 없느니라”(16-17절)    그렇습니다. 온갖 금은 보화로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금신상이 있어도, 그것은 살아 역사하는 신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매순간 우리의 삶에 숨결을 불어 넣으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며 나와 소통하길 원하십니다.           신이란 존재는 우리의 건강 문제나 물질적 풍요만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와 함께 동행하며 살아간다면,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평안함을 잃지 않을 줄 믿습니다. 불안과 염려, 우울함 때문에 삶이 무너지지 않으시길 소원합니다.           사실 우상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살아 역사하는 생명력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소통할 수도 없고, 인간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도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살아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친밀한 교제 나눌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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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10, 2026 [2026-03-08] 브니엘 칼럼 |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을 생각하라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시편 129편 4~5절)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정작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번 자기자신만 옳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틀렸음을 주장합니다.           같은 기독교인들 중에도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적대감을 가지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과 가치관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자신과 다르면 뒤에서 조롱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어느 지역 어느 단체에 가더라도, 그런 습성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유사이래 늘 존재해왔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과 불가피하게 마주치게 되면, 힘들고 억울한 경우가 실제로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 때…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과 똑같이 악한 방법대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과 그 사람에게만 함몰되면, 그와 똑같이 반응하겠지만, 어느 때라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환란 중에도 인내하며 그 상황을 지혜롭게 돌파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치리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즉각 대응하고 즉각 복수하고 싶은 마음…’ 이 끈질긴 영적 싸움에서 무너지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환란 중에 인내와 여유를 갖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방법을 훈련해 나가시길 축복합니다. 악한 자들의 끝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차 없이 정확히 치리하십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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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01, 2026 [2026-03-01] 브니엘 칼럼 | 살려면 먹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시편 107편 18절)    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이 아플 때, 많은 사람들은 식욕도 함께 떨어집니다. 컨디션 회복을 위해서는 잘 먹고 이겨내야 하지만, 오히려 입맛도 없고 식욕이 더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몸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속사람, 즉 영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임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시편 107편 18절에서는 “그들이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몸(body)’의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spirit)’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질수록, 그 분이 공급해주시는 영적인 모든 음식들, 곧 영혼의 양식 먹기를 싫어합니다. 혹시 내가 ‘영혼의 양식’ 먹는 일을 멀리하고 있다면, 내 영적인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영혼을 위한 영양분 섭취를 소홀히 하며, 자신도 모르게 사망의 골짜기로 가고 계시다면, 그 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하다는 것’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라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으로 건져 내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채널이 바로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태로운 고난을 겪을 때,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손길을 고대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채널은, 놀랍게 응답하시는 기적의 방법보다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력 있는 ‘말씀/메시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말씀’을 보내셔서 나를 깨닫게 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 살리시는 분임을 믿습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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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February 22, 2026 [2026-02-22] 브니엘 칼럼 | 역사의 주관자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신명기 34장 9절)    구약성경 신명기의 마지막 34장은 ‘모세의 죽음’과 ‘여호수아의 등장’으로 마무리됩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순간이고,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리더쉽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40년 넘게 백성들과 고생했던 모세가 ‘끝까지 가나안 땅을 함께 정복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이집트 탈출로부터 광야까지의 40년은 모세가 인도하도록 허락하셨고, 가나안 정복부터는 여호수아의 리더쉽을 사용하셨습니다.      사실 다윗 왕에서 솔로몬 왕으로 이어지는 리더쉽의 교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국을 이루었던 다윗 왕 역시, 그가 그토록 원했던 예루살렘 성전 건축만큼은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모두 갖췄지만, 성전 건축 만큼은 다윗이 아닌 솔로몬 시대에 완성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항상 세월은 흘러가고, 시대는 변하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역사가 흘러가듯이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 시대마다 힘있는 리더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무리 탁월한 권력과 리더쉽도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어 없어집니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실 뿐 아니라, 모든 인생을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권세’만이 영원히 변치 않음을 믿습니다. 진짜가 누구신지 잘 깨닫고, 각 자 그 분의 사명에 맞게 쓰임 받으시다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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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February 15, 2026 [2026-02-15] 브니엘 칼럼 | 나는 행복한 사람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신명기 33장 29절)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죽기 직전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33장 6절의 르우벤 지파로부터 시작된 축복은 25절의 아셀 지파까지 계속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심리는 참 알 수 없습니다. 각 지파별로 받은 축복이 무엇인지 그것에 집중하면 되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떤 지파가 가장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또는 ‘어떤 지파는 축복을 덜 받았는지…’ 서로를 비교하게 됩니다. 심지어 ‘시므온 지파는 왜 축복에서 빠졌는지’ 고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은 각각 다 다릅니다. 마치 지금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다르듯 말입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스토리’가 다 다르고, 특히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주님의 계획이 다르십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1:1 관계’에서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복’에 더욱 집중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십니다. 이것을 감사하며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찬일 것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면, ‘우월감과 열등감, 시기, 질투, 원망, 분노, 우울’ 등의 감정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듭니다.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집중하십시오.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복이 무엇인지찾으십시오. 그럼 오늘 모세가 고백하는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신 33:29)의 감동을 풍성히 누리게 되실 줄 믿습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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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February 08, 2026 [2026-02-08] 브니엘 칼럼 | 진정한 주님(Lord)이 누군지 발견하는 사람
    “너는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구약성경 신명기 32장 52절)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온 우주를 이끌고 계십니다.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질지라도, 그 때에도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 내가 이해되지 않을 때,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 오히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진짜로 신뢰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가 이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합니다.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을 바로 앞에 두고, 그저 바라만 본 채 숨을 거두어야 합니다. 40년 넘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우여곡절 끝에 가나안 바로 앞까지 이르렀는데… 그 땅 한 번 밟아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어찌 보면 신명기 32장 52절 말씀이 참 야속하게만 들립니다. “맞은 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인생이 내 마음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을 시간이 더할수록 깨닫게 됩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 세상의 모든 흥망성쇠가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내 인생에 간섭하실 수도 있고, 주님의 목적에 맞게 우리 인생을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진짜 주님(Lord)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다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매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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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anuary 25, 2026 [2026-01-25] 브니엘 칼럼 | 찬양이 나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신명기 31장 19절)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양은 무엇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내 영혼이 은총 입어”라는 찬송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 인생의 특정한 시기마다 많이 불렀던 찬양(복음성가/CCM/찬송가)들이 각각 있었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 받은 영적 체험을 한 이후로 “내 영혼이 은총 입어”라는 찬송이 저에게 늘 감동을 주는 ‘인생 찬송’이 되었습니다.           모세라는 사람은 구약성경 신명기 31장 19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노래로 써서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그 노래를 입으로 부르게 하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와 네 자손들에게 지속적인 증거가 되게 하라!”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내 신앙의 증거가 되는 찬양’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 찬양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깊이 깨달아지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인생찬양’이 과연 무엇입니까? 뿐만 아니라 그 찬양에 담긴 하나님과 나만의 특별한 또는 소소한 스토리는 무엇인지… 자녀들/가족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 신앙에 큰 증거가 될 만한 가슴 뜨거운 찬양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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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anuary 20, 2026 [2026-01-18] 브니엘 칼럼 |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명기 30장 14절)   하나님의 말씀 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선뜻 대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능하다, 할 수 있다, 어렵지 않다’(신 30:11-14)’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시면서, 곧이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마 11:30)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수님의 멍에와 짐을 우리가 나누어 지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 같은데, 예수님은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30장 14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고 선포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가까이 있어, 곧 내 입과 마음에 그 말씀이 늘 함께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 대로 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게 정말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데 여기서 꼭 기억할 것은, 내가 스스로 내 힘만 가지고 노력한다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 곧 성령께서 내 속에 들어와 나와 함께 일하신다면, 이 일은 실제로 가능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네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으면, 그대로 행할 수 있느니라”의 말씀에 더욱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노력하여 말씀을 다 지켜 행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다만 그 말씀이 내 입에서 떠나지 않으며, 내 마음 안에 가득하면…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해집니다. 2026년에는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이 더욱 풍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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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anuary 11, 2026 [2026-01-11] 브니엘 칼럼 |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신명기 29장 19절)    ‘긍정적인 생각(Positive thinking)’이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로 역경을 이겨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때론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절제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God’s Word)’ 앞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의 원인이 될 만한 것을 가르쳐 주시면서, 그것만큼은 절대 삼가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오늘 구약성경 신명기 말씀에서도, 우리가 범하기 쉬운 오류들을 정확히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 속에 자기 스스로 복을 빌며 이르기를…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신 29:19) 참 무섭고 위험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지 말라’고 말하시는데, 우리 스스로 ‘나는 괜찮다, 평안하다’고 바꾸어 이해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며… 내가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에 저주가 임하고 다 멸망할지라도, 나는 평안케 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미 잘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한 채, 여전히 범하고 있는 잘못들… 이젠 줄일 수 있는 2026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스스로 속이는 ‘이 정도는 괜찮다’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긍정적인 생각(Positive thinking)’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이 나와 우리를 살립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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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anuary 04, 2026 [2026-01-04] 브니엘 칼럼 Again | 신앙생활의 시작과 끝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장 3절)   모든 일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욱 중요합니다. ‘용두사미’, 즉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기꾼들은 ‘용두사미’ 전술을 많이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뭔가 있어 보이게 사람들을 현혹했다가, 결국 끝에 가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크리스찬의 신앙생활 역시 용두사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제대로 믿어 보겠다고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결국 예전의 믿음 없던 모습으로 (혹은 예전보다 못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됩니다. 따라서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3장 3절 말씀 역시, 이렇게 강력히 선포하십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특히 ‘나는 신앙생활을 꽤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자칫 착각하기 쉬운게 하나 있습니다. 천국/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지만,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 간다는 착각을 하기 매우 쉽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봐서는,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이루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내 신앙의 성장 원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강력히 선포했던 말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의 참 뜻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령과 함께 시작했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 역시 성령과 함께 끝마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처음 영접할 때에도, 성경의 말씀이 믿어지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했다면, 크리스찬이 되어 살아가는 동안에도… 또한 인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성령 하나님’과 동행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성령과 함께 신앙생활이 시작되어, 성령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시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성령과 함께 끝마치는 큰 축복이 있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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