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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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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04, 2025 [2025-05-04] 브니엘 칼럼 |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위기 16장 30절)    이스라엘 달력으로 (음력) 7월 10일이 되면, 이 날은 이스라엘의 ‘대속죄일’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민족이 이 날 하루 온전히 금식하며 모든 죄를 회개하는 국가적 공휴일이었습니다. 또한 ‘대속죄일’은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The most holy place: 성막/성전 가장 안쪽의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던 장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대속죄일’을 지내며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 첫번째가 레위기 16장 29절의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근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정말 가슴 아파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에는 모두가 금식하고 금욕하며 낡은 옷을 입고(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하지 않고), 스스로 겸손히 낮춰야 했습니다.     두번째로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레 16:29) 했습니다. 물론 다른 일들을 하지 않으면서, 오직 속죄하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뜻도 있지만, 이 말씀엔 좀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즉 ‘속죄와 용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기는, 진심으로 애통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마 5:4). 그러므로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들은, ‘제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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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27, 2025 [2025-04-27] 브니엘 칼럼 | 거룩함에 대한 긴장감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레위기 15장 31절)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제사/예배 때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 답게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레위기에 등장하는 모든 법조항의 근본 취지는 ‘거룩함(Holiness)’에 있습니다. 또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4)는 말씀에 하나님의 간절한 바램이 잘 담겨 있습니다.      레위기 15장은 모든 ‘유출병(피나 진액이 몸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병)’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특별히 그 결론과도 같은31절을 보면, “그들을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성막을 더럽히지 않게 하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 죽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즉 사람이 거룩하지 않은 상태, 부정한 상태로 제사/예배를 드리거나, 죄 가운데 하나님을 뵙게 되면, 죽을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셨습니다.        이 레위기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일찍이 깨달았던 사도 베드로는, 후에 이런 글을 남깁니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그 분의 말씀 속에 담긴 간절한 바램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그래서 ‘거룩해지기’를 결단합니다.       그렇습니다. 과거 구약시대에는 거룩하지 않은 부정한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와 삶은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로 인해,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두렵고 떨린 제사’를 드리지는 않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에 대한 긴장감’이 우리 가운데 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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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20, 2025 [2025-04-20] 브니엘 칼럼 | 예수님의 부활, 확고히 믿으십니까?
    신약성경 마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마무리 된 후, 3일째 되던 날 이른 아침의 일을 묘사합니다. 3명의 여인이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갑니다. 손에는 시신에 바를 향품(Perfume)이 들려 있었고, 무덤을 막은 큰 돌문을 어떻게 치워야 하나 걱정이었습니다.      사실 이 세 여인이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 가거나 숨어 있지 않고, 용기를 내어 무덤에 찾아간 것만으로도 칭찬 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Faith)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그 분의 절대평가’ 임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아쉽게도,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들고 갔다는 점과, 무덤 앞의 큰 돌문을 어떻게 옮길까 고민했던 것은, 곧 주님의 ‘부활’을 실제로는 믿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말로는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진짜 믿음의 여부는 실제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주님이 그토록 가르쳐 주셨던 ‘부활’을 정말 신뢰했다면, 시체에 바를 향품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무덤을 막은 큰 돌문도 염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고, 돌문도 이미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정말 ‘예수님의 부활’을 확고히 믿고 계십니까? 매우 안타깝게도 이 세 여인들 뿐만 아니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리고 나머지 모든 제자들도… 처음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의 ‘말씀(Word)과 영(Spirit)’이 그들 마음에 충만히 임했을 때, 의심하던 제자들은 오히려 ‘부활의 확고한 증인’이 되었고, 그 생명 다할 때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2025년 부활절 기간에도, ‘부활의 성경적 근거들’을 꼭 읽어 보시길 권면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누가복음 24장, 요나 1-4장, 이사야 53장, 시편 16편과 22편, 요한복음 20-21장” 말씀을 통해, ‘부활의 생명력’이 회복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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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13, 2025 [2025-04-13] 브니엘 칼럼 | 여호와의 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위기 10장 2절)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전달 받은 ‘제사의 종류와 방법’들을 레위기에서만 9장에 걸쳐 자세히 설명한 후, 드디어 10장에서는 공식적인 첫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첫 제사를 드리던 도중,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제사장이었던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 중에 죽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이 갑자기 죽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사 중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향을 피우기 위해서는, 제단 위의 불을 가져다가 향을 피워야 했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절차를 지키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편리한 방법으로 불을 피워 분향했던 것입니다(레10:1). 그러자 여호와의 큰 불이 그들을 삼켰고, 제사 도중에 제사장들이 죽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레10:2).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레위기 10장”을 읽는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기 쉽습니다. ‘제사를 드리다가 불을 잘못 피울 수도 있지,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 것은 너무 이해가 안되는 일인데?’라고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정말 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찬에게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주의 깊게 듣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경청해야, 하나님 뜻에서 벗어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주님의 말씀을 흘려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계속 행동한다면, 하나님이 도저히 봐주실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시길 축복합니다.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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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06, 2025 [2025-04-06] 브니엘 칼럼 |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삶
    “모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레위기 9장 6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영광 드린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큰 상을 받거나,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주로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요?      모세는 레위기 9장 6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모세는 레위기 9장까지 줄곧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제사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을 임명하는 절차를 마친 후, 드디어 첫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기 직전에, 레위기 9장 6절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아홉 장 가까이 심혈을 기울여 자세히 설명했던 제사법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면,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나리라 힘주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먼저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신실한 제사/예배를 온전히 드리면,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영광만 바란 채,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에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우리의 믿음을 잘 되돌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마르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동생이 죽자, ‘동생 나사로’를 다시 살리겠다고 말씀하실 때, 마르다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무덤 앞을 막은 돌을 좀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실 때, 전혀 따르지 않았습니다. 행동하지 못했던 이유는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깨우는 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마르다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요 11:40)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마르다는 무덤 앞의 돌들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때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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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30, 2025 [2025-03-30] 브니엘 칼럼 | 리더의 조건
    “모세가 회중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하고(레 8:5)...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레 8:35)”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기였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Moses)’라는 지도자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수 백 년 동안 이집트(애굽)의 노예로 지내는 동안, 자칫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했습니다.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Exodus)”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십니다.     그런데 이 ‘모세’라는 사람에 대해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내용을 잘 읽어보시면, 그가 리더로서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모세 스스로도 고백하기를, 자신은 출애굽이라는 큰 과업을 이루기엔 부족한 사람임을 여러 차례 고백합니다. 특히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인 ‘언변의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만 봤을 때, 모세는 출애굽을 위한 적합한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사람의 투표를 통해 리더를 선출했다면, 연설과 토론에 약한 모세는 리더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희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모세를 큰 위기 가운데 리더로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구약성경 레위기 8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레위기 8장에서만 무려 8번을 강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 그대로를 가감 없이 전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잘 나고 똑똑하고 언변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전하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을 간절히 찾으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면에서 정말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과연 ‘하나님이 간절히 찾으시는 리더의 기준/조건’에 합당하십니까?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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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23, 2025 [2025-03-23] 브니엘 칼럼 | 내 마음의 제단 - 불을 꺼뜨리지 마라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레위기 6:13)    과거 로마시대의 역사 자료들을 보면, 유대 지역으로 발령 받은 로마 총독과 공무원들, 그리고 파견 군인들이 유대 지역 근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도인 로마를 기준으로 볼 때, 유대 지역은 거리상으로도 한참 떨어져 있는 변방 지역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주목 받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또한 까다로운 유대인들을 사고 없이 관리하는 것도 어려운 점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 외에도, 유대 지역 근무를 꺼려하는 또 다른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일 드려지는 제사가 로마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색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엄숙한 분위기도 적응이 안됐지만, 동물을 태우는 냄새와 연기 때문에 매우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로마총독들은 도시 환경이 더 좋은 다른 지역에 가서 지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필요한 날에만 제사를 드리지 않고) 매일 끊임 없는 제사가 계속 이어졌을까요? 바로 그 근거가 되는 중요한 구절이 바로 “레위기 6장 13절” 말씀입니다.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물론 우리들은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구약시대와 같은 동물 제사를 드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꺼뜨리지 말아야 할 제단의 불’은 과연 무슨 의미겠습니까? 내 마음의 제단에서 항상 꺼지지 않고 타올라야 할 ‘성령의 불 / 기도의 불 / 예배의 불’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필요할 때만 제단의 불을 피우라’ 하지 않으시고, “끊임 없이 제단 위에 불을 피워 꺼지지 않게 하라”(레 6:13)고 말씀하셨는지… 현재 우리의 신앙생활을 깊이 되돌아 볼 수 있는 말씀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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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16, 2025 [2025-03-16] 브니엘 칼럼 | 진정한 회개, 뻔뻔한 회개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구약성경 레위기 6장 5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회개’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백한 죄를 짓고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게만 ‘회개’하지, 피해를 본 사람(피해 당사자)에게는 진심 어린 사과나 배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인의 잘못된 회개를 공개적으로 꼬집은 영화가 바로 “밀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회개’란, 결코 하나님께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잘 묘사하는 곳이 바로 레위기 6장의 “속건제(Guilt Offering)” 장면입니다. 실수든 고의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사과와 더불어 물건을 온전히 보상할 뿐 아니라, 피해액의 5분의 1을 더 보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는 따로 ‘속건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구약시대’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그 내용과 취지는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의 세금을 착취하기로 유명했던 세리 ‘삭개오(누가복음 19장)’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았을 때, 그는 피해액의 4배를 사람들에게 보상하고, 전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회개의 마음과 보상의 액수가 더 커졌습니다.      영화 ‘밀양’에 나왔던 ‘살인자/유괴범의 회개’는 분명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이유는, 여전히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적인 회개’를 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지탄 받을 ‘뻔뻔한 회개’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레위기 6장 말씀의 온전한 ‘속건제’를 통해, 크리스찬의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올바로 정립될 수 있으시기를 소원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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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09, 2025 [2025-03-09] 브니엘 칼럼 | 자복 – 스스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다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레위기 5장 5절)    하나님께서 ‘죄(Sin)’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레위기의 제사 장면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그 죄를 온전히 분리해내려면, 정말 어렵고 복잡한 제사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죄 문제’에 대해 민감하실까요?       좋은 아버지(Good father)라면, 자녀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관계가 멀어지다 못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다면, 정말 가슴이 아픈 일이겠죠.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바로 ‘죄(Sin)’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거나 풍성케 할 수 있는 방법들이 허락되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궁극적으론 하나님과 나를 단절케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사탄(Satan)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나에게 ‘죄’를 집어 넣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에게 여전히 ‘소망’이 남아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 지은 나를 그냥 방치해 두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다시 정결케 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에는 ‘제사’였고, 지금과 같은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내가 ‘죄’로부터 정결케 되어, 진심을 다 해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는, 결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하나님께 다시 영광을 드리는 일이고, 나 자신은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레위기 5장 5절 말씀을 마음에 꼭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에 허물이 발견되었을 때, 그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복(스스로 죄를 자백/참회)’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우리의 삶이 죄 짓는 도구로 쓰이기 보다, 오히려 죄를 깨닫고 자복하는 삶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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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02, 2025 [2025-03-02] 브니엘 칼럼 | 고운 가루의 모습으로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위기2장 1절)    구약시대의 제사는 동물을 제물로 드리든 곡식을 드리든, 엄격한 절차와 세심한 정성이 뒤따랐습니다. 내 죄를 대신해 동물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려야 했고, 그 살과 가죽, 뼈와 기름 등은 규칙대로 철저히 분리하고 제거해서 불로 태웠습니다. 곡식의 경우에도, 추수한 알갱이 그대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흠 없는 곡물을 선별하여 최대한 곱게 빻아 가루를 만들고, 그 위에 기름과 향유를 부어 향기롭게 태워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제사는 최선을 다 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는 것이 목적이었고, 철저히 회개하는 심정으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의 각 종 제사에 대한 규칙과 내용을 묵상하면서 계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철저한 제사의 장면들을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알려주시는 이유가 뭘까… 간절히 바라기는, 레위기의 제사 장면들이, 과거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던 옛날 이야기 정도로만 여겨지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에게 이미 들어온 죄악들을 하나님 앞에서 제거하고 용서 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철저한 회개/참회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구나…’ 깊이 깨달을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오늘 읽으신 레위기 2장 1절에서는 곡식을 곱게 빻아 가루로 태워드리는 ‘소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고운 가루’를 만들어, 올리브 기름과 유향을 섞어 향기롭게 드리는 제사… 우리의 예배와 삶이 이런 ‘소제’와 같은 곱고 향기로운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뾰족한 부분들은 곱게 다듬고, 하나님 앞에 내 예배와 삶을 드릴 때는 고운 가루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향기’를 더하여 드릴 수 있는 그런 예배자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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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February 23, 2025 [2025-02-23] 브니엘 칼럼 |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 – 속죄(Atonement)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레위기 1장 4절)     구약시대 ‘제사’에 관한 규정들이 자세히 나와 있는 책이 바로 구약성경 “레위기”입니다. 한국의 전통 문화와는 달리, 구약의 제사는 ‘조상’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는 모세를 불러, 제사에 대한 세세한 규칙들을 알려주십니다. 모세와 하나님이 영적으로 소통하는 장소, 곧 ‘회막(The tent of meeting)’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일러주신 ‘회막’의 말씀 중, 저희가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구절이 바로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레 1:4)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제사, 곧 지금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오늘은 예배 드릴 기분이 아냐… 오늘은 예배 드릴 상태가 아냐…’ 사실 이 말 속에는 아직도 예배의 중심이 ‘나’에게 있음을 스스로 나타냅니다. 예배는 내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도록, 최선을 다 해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구절은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의미 안에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속죄(Atonement)’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내가 은혜 받고 문제가 해결 되고 새 힘을 얻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으나, 동시에 우리의 죄를 용서 받는 ‘속죄의 제사’가 드려졌는지 반드시 점검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 그 중심에는 반드시 ‘속죄’가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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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February 16, 2025 [2025-02-16] 브니엘 칼럼 | 하나님을 기쁘시게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립보서 4장 11절)    사도 바울(Apostle Paul)이 로마제국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썼던 편지(옥중 서신) 중에 하나가 바로 신약성경 “빌립보서”입니다. 이 편지의 주된 내용은,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잃지 말라’는 격려의 편지였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야만 했고, 당시의 모든 크리스찬들 역시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고통의 시기에도 바울은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빌 4장 10절)고 편지합니다. 도대체 힘든 감옥생활 중에도 바울이 기뻐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감옥에서만 4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매일 사형의 위기를 넘기며 지내야 했으므로,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그 때, 빌립보 지역 교회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집니다. 빌립보 지역의 교회가 이전보다 부흥하여, 수감 중인 바울에게 직접 후원금과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장 11절) 너무나 어려운 수감생활 가운데 ‘후원금’을 받아서 기뻤던 것이 아니라, 빌립보 지역 교인들의 믿음이 이만큼 성장하고 부흥했음에 말할 수 없이 기뻤을 것입니다.     이 구절을 좀 더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물질을 드려서가 아니라, 그 물질에 담긴 우리의 ‘믿음과 사랑’ 때문에, 하나님도 크게 기뻐하시지 않을까...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거나 필요한 분이 아니신데…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부흥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정말 기뻐하시지 않을까 묵상해봅니다. 이번 한 주도 하나님을 흐뭇하게 해드리는 의미 있는 한 주 되시기를 축복합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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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February 09, 2025 [2025-02-09] 브니엘 칼럼 |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되는 공동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장 5절)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사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이유는, 실제론 ‘한 마음 한 뜻’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빌립보서 2장에서도 한 마음 한 뜻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2절)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저 말이나 글로만 주장하지 않고, 실제로 하나될 수 있는 구체적인 비결을 제시합니다.            그 첫번째가 바로, 2장 3절 말씀에서 일러주시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In humility consider others better than yourselves)”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실제로 하나되지 못하는 그 근본 원인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옳고 낫다고 여기는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동의하더라도, 끝까지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습니다. 어떤 공동체든지 하나가 되려면, 각 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나보다 남을 낫게(better) 여기는 마음을 서로 소유해야 합니다.            그러한 본(example)을 친히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의 형체를 가지사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고, 자신을 낮추시되 죽기까지 본을 보이셨으니, 곧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이 놀라운 일을 깨달은 사람들만이, 비로소 예수님 안에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5절)은 우리 공동체가 진정 하나될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예수의 마음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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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February 03, 2025 [2025-02-02] 브니엘 칼럼 | 어려운 일 당할 때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장 12절)    “어려운 일 당할 때”라는 찬송(새찬송가 543장)이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1절)” 어려운 고난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위축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때일수록 주님을 더욱 의지하겠다는 결단의 찬송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낙심하지 않고, 그동안 본인이 선교했던 교회들에게 꾸준히 편지를 써서 격려합니다. 일명 바울의 ‘옥중서신’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저희가 읽은 “빌립보서”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감옥에 갇힌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 원하노라”    바울을 잡아 가둔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고 핍박하면, 세상에서 기독교가 사라질 줄로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의 복음이 더욱 강성해지고, 더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복음을 지켜내는 사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수많은 성도들이 더욱 뜨겁게 도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또한 수많은 크리스찬 선배들처럼… 우리도 인생 가운데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앞서 부른 찬송의 가사처럼, “나의 믿음은 적으나, 의지하는 주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고백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현재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믿음의 진전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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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anuary 26, 2025 [2025-01-26] 브니엘 칼럼 | 변함 없이 꾸준한 불순종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이십 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레미야 25장 3절)    구약성경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임했던 회개와 심판의 메시지… 비단 과거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닌 것을 잘 알기에, 오늘 이 말씀 앞에 선 우리들도 큰 책임을 느낍니다. 예레미야 25장 3절 말씀에 보시면, “요시야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23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무려 2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것도 대단한 일인데… 더욱이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대로 가감없이 전달했다는 사실은 더욱 대단합니다. 그런데 더욱 대단한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23년 동안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들었으면서도, 변함 없이 꾸준하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유다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40여 년 가까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도 때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제가 지금 당장 망하고 벌받지 않도록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점,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용서로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께도 똑같이 묻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하나님 말씀 앞에 불순종하고 계십니까? 오늘 예레미야의 말씀이 내 마음을 치는 큰 울림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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